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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의 지속가능한 한량질 / 남윤주

몽상가들의 유토피아 The great outdo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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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윤주 블랙야크 마케팅본부 브랜드커뮤… (fpost@fpost.co.kr) | 작성일 2020년 05월 11일 URL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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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 로빈스’의 창업자 로열 로빈슨.>

 

우뚝 선 바위 위에 한 남자가 끝없이 펼쳐진 광활하고 장대한 자연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정장을 입고 지팡이에 기댄 뒷모습만 볼 수 있는 우리는 순간 그 남자의 시선으로 자연을 마주하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19세기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풍경화가인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 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두 누이, 그리고 남동생을 잃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광활한 대자연에 홀로 마주 선 고독과 상실감과 함께 더 단단해지겠다는 결연함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그러면서도 그림에서 그는 자연을 지배하는 자가 아닌 언제라도 훌훌 털고 또 다른 길을 걷고자 하는 방랑자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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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바다 위의 방랑자>

 

머메리즘의 발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역사학자로 손꼽히는 존 허스트에 따르면 낭만주의는 유럽 전역에 걸친 운동이었지만 독일에서 가장 강력했고 가장 완전하게 발현됐다고 합니다. 그의 저서 ‘세상에서 가장 짧은 세계사’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독일 낭만주의 작가들은 게르만 전사들이 문명과 혼합되고 로마와 기독교와 혼합되기 전에는 어떠했는지를 알고 싶어 했다. 낭만주의자들은 이 숲 속의 사람들, 그들의 활력과 생명력, 미숙함을 좋아했고, 나약한 지식인들을 따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지식인들이 처음으로 민속 문화를 수집하기 시작했을 때쯤, 건방진 프랑스 지식인들이 이성에 대해 재잘거릴 때 그에 대한 대답은 ‘문명은 인위적이다’라며 부츠를 신고 도보 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프랑스 지식인들은 바로 이에 앞서 시작된 18세기의 계몽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은 세계를 무지와 미신이 지배하는 곳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리고 “종교는 미신이다”라며 과학혁명의 발견들을 통해 이성을 최고의 권력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 당시 유럽에서는 중세 이후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알프스에는 악마가 산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자애로운 대상으로 보는 우리나라나 경외의 대상으로 보는 히말라야와는 달리 그곳은 두렵고, 추악하며 인간을 괴롭히는 존재였습니다.

 

근대 등반이 시작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미신들이 타파됐어야 했고 알프스 초기 등반사에서 많은 과학자들이 거론된 것 또한 우연이 아닙니다. 이들은 ‘학문적 연구’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알프스에 오르면서 빙하를 연구하고 지질을 탐색하고, 기압을 측정했다고 합니다. 

 

과학적 근대 등반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오라스 베네딕트 드 소쉬르 또한 스위스 제네바의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학자였습니다. 이렇게 동전의 양면과 같은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부르주아 지식인들의 기존 체제에 대한 저항감으로 알프스는 악마의 땅에서 자연스레 탐구의 대상이 됐고(알피니즘의 유래) 자아를 찾아 오르는 대상이 됐습니다. 

  

그렇게 알프스에서 시작한 알피니즘의 새로운 시대를 연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등반가는 바로 ‘머메리즘’으로 유명한 앨버트 머메리입니다. 높이 보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좀 더 어려운 방식’으로 오르는 것이야 말로 등반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머메리즘이라고 합니다. 당대의 반항아였던 이런 청년 머메리의 주장은 그 당시엔 대단히 전복적이고, 위험하며 매혹적이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고도(altitude)가 아니라 태도(attitude)다!”라는 한국 산악인 김영도의 유명한 말의 뿌리도 머메리즘에 닿아 있습니다. 정상이라는 ‘결과’를 두고 남들과 경쟁하지 않고 그곳에 이른 ‘과정’을 통한 성장을 더욱 중시한 것입니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루트를 개척하라’라고 해석되는 머메리즘은 스포츠 정신과는 다른 아웃도어 정신의 태동이기도 하죠. 

 

실제로 20세기 초반에는 가이드를 대동하지 않는 ‘단독등반’이 알피니즘을 풍미했다고 하는데요, 훗날 우연히 발견된 그들 시체 곁의 배낭 속에서는 니체의 책들이 자주 발견됐다고 합니다. 

 

그들은 인간이란 더 나은 존재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믿고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며 이를 위해 더 나아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목숨을 내걸고 등반에 나선 이들을 현세를 혐오하거나 염세주의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아를 찾고 삶의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기 위한 진취적인 기상과 변화의 과정이었을 것입니다.

  

미국 아웃도어는 히피가 만들었다?

196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는 약 10만 명이 모여 ‘새로운 삶의 방식’을 외치며 인위적인 문명에 대해 저항하는 거대한 폭발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산업의 급속한 발전과 기계문명, IT산업의 발전으로 인한 인간성 회복을 외치며 개인의 행복과 평화를 꿈꿨습니다. 동시에 반핵과 반인종주의, 베트남 전쟁 참전 반대를 위한 대규모 시위를 맨발에 장발 차림으로 펼쳤죠.

  

“어떠한 규칙도 만들지 말고 단순하고 솔직하고 소박하게 살자. 자신의 먹을거리는 자신이 재배하고 자신의 옷은 자신이 만들자. 머리를 기르고 공동체 생활을 하자.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서로를 솔직하게 대하자. 그리고 노동자나 농민이나 ‘고결한 야만인들’처럼 더욱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서 삶의 방식을 차용해 오자.” 이들의 외침은 이후 힙스터, 여피, 보보스, 보헤미안 등 ‘히피적 삶의 태도’가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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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 로빈스’의 창업자 로열 로빈스(좌).>

 

미국을 대표하는 아웃도어 브랜드는 노스페이스와 마모트, 파타고니아입니다. 노스페이스는 1966년 히피문화를 대표하던 ‘더 그레이트풀 데드(The Gra teful Dead)’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샌프란시스코 해변가 작은 가게로 시작했습니다. 

 

1971년 캘리포니아 대학생들이 알래스카 탐험을 하며 직접 제품을 만들기로 결심한 마모트 또한 그 시대 청춘들의 시대정신을 품고 있는 브랜드이죠. 주한 미군 출신으로 인수봉에 ‘취나드 길’이라는 멋진 등반선을 남긴 이본취나드는 1973년 캘리포니아 버려진 도축창고 보일러실에서 파타고니아를 창립합니다. 젊은 등반가들과 요세미티 거벽을 등반하면서 말이죠. 

 

미국의 현대 등반은 바로 이 즈음 캘리포니아 요세미티의 거대한 바위에서 꿈틀대기 시작합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크고 높은 요세미티의 랜드마크인 앨 캐피턴은 전 세계 암벽등반가들에겐 꿈의 거벽(Big Wall)이기도 합니다. 

 

유럽인에겐 역사와 문화가 천박했던 미국의 등반문화는 거벽등반의 등장으로 전 세계 등반계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워렌 하딩. 

 

“등반? 그런 건 미친놈들이나 하는 짓이죠. 아무런 가치도 없고 의미도 없어요. 마치 우리들의 인생처럼” 

 

이렇듯 그는 미국 히피문화의 등반사적 대변인이기도 했습니다. 심드렁하고 쿨하게 내뱉긴 했지만 건설기사로 일하다 오른 쪽 다리가 부러져 무기력해질 때쯤 이 운명의 바위를 올라가보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무기력보다 견디기 힘든 건 없었을 테니까요. ​ 

 

워렌 하딩은 이후 거벽등반의 또 다른 거물인 브랜드 ‘로열 로빈스’의 창업자 로열 로빈스와 등반윤리에 대한 뜨거운 논쟁 벌이기도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맨발로 나무위를 올랐던 로열 로빈스는 암벽등반에 대한 태생과 지향점 그리고 철학과 윤리를 만천하에 공표한 등반가입니다. 

 

바로 ‘소년이 나무에 오르는 즐거운 놀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이 놀이에도 지켜야 할 윤리가 있다’는 단순하고도 분명한 어조로 말입니다. 그는 화려한 등반 경력에도 ‘최고의 등반가’가 되려고 했던 자신의 목표가 ‘잘못됐다’고 서슴없이 말하곤 ‘우정’과 ‘즐거움’이라는 좀 더 훌륭한 목표로 수정했다고 합니다. 

 

등반 윤리 논쟁에 대해서도 “제가 잘못 생각했던 거 같아요. 난이도를 높이기 위해 볼트를 박는 하딩의 등반철학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길을 가고, 자연 보호를 위해 틈새에 끼워 넣는 저의 등반철학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길을 가면 되는 건데 말이죠”라고 초연하지 못했음을 뉘우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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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의 귀환

현재 세계 1인당 소득은 1850년의 10배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가장 선명하게 꿈꿨던 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무릉도원 ‘코케뉴’였습니다. 풍요의 땅인 코케뉴에서 사람들은 서로 다투지 않고, 파티를 열어 춤을 추고 술을 마시며, 졸리면 아무 곳에나 쓰러져 잤다고 합니다. 

 

중세인이 꿈꿨던 코케뉴는 아마 지금의 현대 사회일 것입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부유하고 안전하고 건강하게 생활하는 무릉도원인 풍요의 땅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은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날 이유’라고 합니다. 

 

블랙야크에서 2013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앱 기반 국내 최대 산행 커뮤니티인 BAC 회원수가 4월 한 달간 작년 동기 대비 2배가 늘어 현재 15만 명이 되었습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증가한 회원 중  2030세대가 절반을 차지했다는 것입니다. 코로나로 인한 혼산족 증가도 물론 영향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은 작년부터 두드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자연과 마주하며 내면세계를 확장하고 환경에 대한 책임의식을 자발적으로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이토록 내적 외적인 성장을 주는 대자연을 내가 ‘이용’한 만큼 ‘보존’해야겠다는 의식이 높아지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이들이 ‘클린마운틴365’나 ‘Leave no trace’와 같은 해시태그를 달고 자연윤리를 확산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제 국립공원과 산업계는 소비자들과 함께 자연이 주는 혜택을 더 많이 되돌려줄 수 있는 루트를 함께 개척해야 합니다. 

 

아직 한국 시장에서는 누구도 정상을 등반한 적이 없는 거벽인 ‘지속가능성’. 몽상가(utopian dreamer)의 ‘좋은 장소’와 ‘없는 장소’를 동시에 가리키는 유토피아적 사고로 돌아간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마치 ‘문명은 인위적이다’라며 ‘날 것’ 그대로인 자연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던 낭만주의 시대와 60년대 미국 서부 거리로 뛰쳐나온 10만 명의 청춘들이 떠오르는 요즘 시대라면 말이죠. ​ 

경력사항

  • 現 에딧시티 프로젝트 대표 / 現 UN SDGs 협회 전문위원
  • 前) 나우매거진 포틀랜드, 타이베이, 베를린 편 콘텐츠디렉터
  • 前) ㈜ 블랙야크 마케팅본부 브랜드커뮤니케이션 팀장
  • 홍익대학교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 MBA
  • 2003-2012 광고대행사, PR 회사 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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