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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世紀少年의 울트라리스크/이학림

궁극의 명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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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학림 스트리트캐주얼 FLUX 디렉터 (fpost@pofst.co.kr) | 작성일 2019년 12월 30일 URL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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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의 일이다. 

 

100년 이상 유럽 왕실을 대상으로만 판매되었다는, 그래서 일반인들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한 ‘빈센트앤코’라는 스위스 럭셔리 브랜드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들은 대한민국 럭셔리 문화의 상징인 ‘청담동’에서 고급 런칭 파티를 열고, 당시 패셔니스타로 불리던 연예인 여럿을 초청하고 ‘초’고가의 제품을 무료로 협찬하는 등 활발하게 마케팅 활동을 펼쳤고, 시계를 협찬 받았던 연예인들은 ‘초’고가의 ‘유럽 왕실이 비밀리에 사랑한다는’ 그 시계를 자랑스레 차고 공개 석상에서 뽐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들의 간 큰 행보는 당연히 얼마 가지 않아 밝혀지게 되었는데, 사실은 개당 수 천 만원에서 수 억 원에 이르는, 유럽 귀족들이 사랑해 마지않는다는, 무려 ‘100년 전통의’ 고급 시계들은, 사실은 중국산 부품을 사용해 경기도 시흥에서 만들어진, 자랑스러운 Made in Korea 제품이었던 셈이다. 

 

모든 것이 밝혀진 후, 결국은 간 큰 업자의 사기행각에 모두가 피해본 것처럼 보도가 되고 그렇게 사건은 잊혀 졌지만, 사실 이 사건은 한국인들이 얼마나 무분별하고 맹목적으로 브랜드를 따라다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기에, 조금 더 자세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빈센트앤코는 이름에서부터 뭔가 수상한 냄새가 물씬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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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앤코는 한국과스위스 양국에 동일한 브랜드를 등록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사진은 사기관련 보도 영상.>

  

일반적으로 서양 문화권에서의 기본적인 네이밍 센스는, 사람의 풀 네임 혹은 성을 사용하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빈센트앤코’를 듣는 순간 누구나 떠올렸을 ‘Tiffany&Co’의 창업주 이름은 찰스 루이스 티파니(Charles Lewis Tiffany)이다. 물론 샤넬, 디올, 구찌, 프라다, 펜디의 경우에도 모두가 창업주의 성을 브랜드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빈센트 반 고흐’처럼, ‘빈센트’는 성이 아니라 이름이다. 영화 ‘극한직업’에서 본명이 ‘창식이’인 한 인물이 영어식 이름으로 만든 것이 ‘테드 창’이었다는 한국식 센스의 웃픈 사연처럼, ‘빈센트앤코’는 100년 전통의(100년이란 설정도 수 백 년씩 된 브랜드가 널린 유럽 럭셔리 브랜드들을 떠올려보면 우습지만 이 정도는 귀엽게 넘어가주자) 유럽 럭셔리 브랜드를 칭하기엔 네이밍 센스부터 구린내가 풀풀 난다. 

 

물론 코미디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빈센트앤코 엠블럼 속의 폰트는, 영국의 대표적인 신문인 더 타임즈(The Times) 본문에 사용되기 위해 1932년에 디자인 된 저 유명한 ‘Times New Roman’ 폰트이다. 

 

유럽 어느 왕실에 100년이 넘도록 납품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초(超) 럭셔리 브랜드의 로고가 무려 ‘공짜폰트’인 ‘Time New Roman’이라는 것이다. 

 

마리 앙뜨와네트도 즐겨 먹었던 것으로 유명한 220년 전통의 프랑스 초콜릿 브랜드 드보브 에 갈레(Debauve & Gallais)의 엠블럼을 살펴보자. 1800년 설립된 드보브 에 갈레는 1819년 왕실로부터 왕실 공식 납품업체로 지정된다. 

 

그래서 드보브 에 갈레의 엠블럼에는 프랑스 왕실의 문장인 플뢰르-드리스 (Fleur-de-lis, 3개의 백합문양)이 새겨져있다. 영국 왕실의 공식 납품업체인 장갑 브랜드 코넬리아 제임스(Cornelia James)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영국 왕실의 문장을 로고와 함께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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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보브 에 갈레(Debauve & Gallais)의 엠블럼.>


명품의 가치


비단 이런 오랜 브랜드들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최근 기아 자동차가 새로운 앰블럼을 위해 얼마를 사용했는지, 기업들이 C.I 작업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떠올려보면, ‘빈센트앤코’의 허접하기 짝이 없는 엠블럼을 보고도 아무 의심이 없었던 사람들이 대다수였다는 것은 불가사의 한 일이다. 

 

문제는 우연하게 파티에 어떤 스위스인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 의심스러웠던 한 투자자가 뒤를 캐내서 전말을 밝혀내기 전까지, 무려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들이 내걸었던 ‘세계 상류 1% 만이 착용할 수 있는 시계’라는 말에 넘어가 10만 원짜리 ‘메이드 인 경기도 시흥’ 시계를 수백 수천 만 원이라 철썩 같이 믿고 있었다는 것이다. 

 

빈센트앤코는 해당 기간 동안, 총 32명에게 35개의 시계를 팔아 4억 5천 여 만원의 판매수익을 올렸으며, 이들은 모두가 이른바 ‘한 패션하시는’ 분들이었을 것이다. 물론 여전히 ‘빈센트앤코’를 검색하면 자랑스럽게 ‘빈센트앤코’를 뽐내고 있는 ‘패셔니스타’들을 포함해서다.

 

물론 모두가 바보였던 것은 전혀 아니다. 시계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과 고급 백화점의 시계 담당자 등 시계를 볼 줄 아는 사람들은 이미 이 씨가 사기꾼임을 눈치 채고, ‘빈센트앤코’ 측으로부터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거나 무시했다고 한다. 

 

결국 ‘빈센트앤코’가 팔았던 것은 시계가 아니라, 상류층에 대한 갈망 내지는 ‘유럽’, ‘귀족’, ‘왕실’ ‘상위 1%’와 같은, 보이지 않는 다른 세상에 대한 욕구였던 셈이다. 물론 그 대가는 배가 찢어지도록 우습게 슬픈 ‘흑역사’의 한 장면이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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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넬리아 제임스 로고.>


명품이 주는 의미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서 백화점은 선물을 사러 온 많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연인, 혹은 부부 사이에서 좋은 선물을 주기 위해 쇼핑을 온 사람들의 대화를 듣다 보면, 값비싼 지갑이나 가방을 가리키며 “오빠, 요즘은 이 브랜드의 이 모양 가방이 유행이래” 혹은 “요즘엔 이 브랜드에서 나온 이런 옷을 입어야 인싸래”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어떻게 봐도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의심스럽기만 하던 ‘빈센트앤코’의 허접한 시계를 수백, 수 천 만원씩 내고 사면서 “이렇게 멋진 스위스 감성의 바디 실루엣과 이렇게 화려한 유러피안 감성의 가죽색깔, 그리고 이 독특한 무브먼트의 기계미라니!”라며 감탄에 감탄을 했을 십 수 년 전의 호구들과, (남들이) 많이 들고 다니니까. (남들이) 예쁘다고들 하니까, (남들이) 이걸 들고 다녀야 칭찬 해 주니까, 꼭 그 가방을 사서 길거리에 들고 다니며 수많은 사람 중 하나가 굳이 되고 싶다며, 마치 그것이 신분 상승의 수단 정도는 충분히 된다고 굳게 믿고 있는 백화점 쇼핑객들을 보면서, ‘빈센트앤코’의 이모씨는 어쩌면 사기꾼이 아니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력사항

  • 現 ) 스트리트캐주얼 ‘FLUX’ director
  • 前 ) 서울패션위크 Generation Next Seoul 참가
  • 前 ) 20th Century Forgotten Boy Band 디자이너
  • 前 ) Parsons the New School For Design, Men's wear B.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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