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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世紀少年의 울트라리스크/이학림

패션에서 예술이 사라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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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학림 스트리트캐주얼 ‘FLUX’ 디렉터 (haklim.lee77@gmail.com) | 작성일 2021년 02월 22일 URL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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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아메리칸 사이코'>

 

2000년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Amer ican Psycho)’는 1980년대 후반, 뉴욕의 ‘여피(Yuppie: Young Urban Profes sional의 이니셜인 YUP+hippie의 합성어로, 특히 뉴욕을 중심으로 한 도시에서 근무하는 고연봉의 젊은 지식노동자를 뜻함)’들의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허세와 그에 대한 조롱으로 가득하다. 주인공 패트릭은 부유한 집안 출신의 백인이자 하버드를 졸업하고 MBA를 거쳐 월 스트리트의 투자회사에서 일하는 전형적인 상류층이며, 그의 주변 인물들 역시 하나같이 다를 바 없는 인물들. 

 

그들은 모일 때마다 입으로는 세계정세를 논하고 인종차별을 걱정하며 핵무기 경쟁과 테러리즘과 기아를 없애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척 하지만, 사실 그들의 초미의 관심사는 새로 만든 누구의 명함이 더 세련됐고 누구의 머리 스타일이 더 멋진지, 누가 뉴욕에서 가장 잘나가는 레스토랑인 ‘도르시아’에 예약을 먼저 하는지 따위의 것들일 뿐이다. 

 

됐고, 그 가방은 누구꺼?

이 영화 최고의 장면. 패트릭은 자신의 것과 극명하게 비교되는 ‘압도적인 퀄리티의 명함’을 갖고 있는 폴 앨런에게 극도의 분노를 느끼게 되고, 그 콤플렉스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 폭발하면서 폴 앨런을 도끼로 살해하게 된다. 그는 시체를 처리하기 위해 가방에 시체를 넣고 택시 트렁크에 이를 싣던 도중 길을 가고 있던 다른 친구 루이스에게 목격된다. 

 

아는 척을 하며 다가온 루이스는 심각한 패트릭의 표정과 이상하게 커다란 가방, 그리고 줄줄 새고 있는 흥건한 핏자국을 보며 흠칫 놀라면서 대단히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유심히 패트릭의 가방을 살펴본다. 마치 ‘패트릭이 살인을 저지른 것은 아닐까?’라고 의심이라도 하는듯한 얼굴로. 당황해서 빨리 자리를 뜨려는 패트릭에게 그는 손으로 그의 큰 가방을 가리키며 한마디를 건넨다. 

 

“너, 그 가방 도대체 어디서 산거야.”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패트릭은 트렁크를 닫은 후 떠나면서 건네는 한마디.“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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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프림 벽돌>

 

가치의 결여

아메리칸 사이코의 주인공 패트릭은 ‘발렌티노 쿠투어’ 수트를 즐겨 입고 ‘올리버 피플스’의 안경을 좋아한다. 그는 균형 잡힌 식사와 규칙적인 운동으로 자신을 가꾸고, 여성들보다 많은 화장품을 사용하며, 자신의 명함에 사용된 폰트가 ‘실리안 레인(Silian Rail)’라는 것까지도 알고 있는 세련된 여피이다. 하지만 이 영화 어디에서도 패트릭은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를 포함한 모든 주변 인물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허영과 겉멋만을 이야기하고 표현할 뿐, 본질에는 접근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모습으로 일관한다. 마치 ‘그런 것 따위에 왜 관심을 가져야 하지?’라고 반문하듯이 말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오브제들은 공허함 그 자체이다. 

 

등장인물들은 만날 때마다 그들이 얼마나 신사들이고 교양을 갖춘 사람들인가에 대해 몇 마디를 나누지만, 그 모든 문장들은 공허할 뿐이고 보는 내내 뭔가 빠져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심지어는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 이야기를 할 때조차 마치 AI가 백과사전을 읊조리듯 감정이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이 건조한 말투로 책을 읽듯 단어를 나열할 뿐이다. 물론 영화가 보여주는 이런 표현들은 당시의 미국 사회를 풍자하고 조롱하기 위한 극적인 묘사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묘하게 오버랩 되는 장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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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 미켈레> 

 

예술이 사라졌다

패션디자이너로서 패션을 대하는 필자의 태도는 꽤나 낭만적이고 감성적이다. 패션은 분명히 ‘순수미술(Fine Art)’의 한 장르로서, 단순히 환경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감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엄연히 예술의 한 장르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패션과 지극히 현실적인 차원에서 다뤄지는 패션이란, 결국은 큼지막한 루이비통이나 구찌의 로고 내지는 톰 브라운의 흰 줄이 ‘깔끔하게’ 보이는, 그래서 결국 ‘비싼 옷을 입을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진 사람’으로 보여지는 것이 전부인 양 생각하게 한다. 꽤 최근의 ‘슈프림 열풍’은 그런 생각을 뒷받침한다. 

 

사실 슈프림이라는 브랜드의 품질은 처참한 수준이다. 챔피언이나 유니클로에도 한참 못 미치는 원단의 품질부터 끔찍한 재봉의 품질과 마무리 수준은 정확히 가격표에 달린 숫자에서 0을 하나 빼는 것이 정확할 정도로 슈프림이라는 브랜드는 딱지 장사 이상도 이하도 아닌, 말 그대로 ‘길거리 브랜드’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한 때 슈프림은 ‘짱돌’에 로고를 박아 놓고 32달러를 받고 팔아도 순식간에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으니, 더 이상 어떤 숭고한 패션 담론이 의미가 있을까. 

 

요즘은 중학생들도 구찌 지갑 정도는 들고 다녀야 무시를 당하지 않는다고 한다. 패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알렉산드로 미켈레의 아름다운 세계관에 반해서 분수에 맞지 않는 구찌의 지갑을 품에 안는 것이 아니라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 혹은 ‘패셔너블하다는 평가를 듣기 위해서’ 구찌 ‘정도는’ 들고 다녀야 한다니, 이 얼마나 구질구질하고 천박한 문장이란 말인가. 하지만 생각해보면, 패션 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책임은 있다. 

 

우리들은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패션 디자이너로서, 또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과연 누가 우리 젊은이들에게 ‘학교에서 사람 구실하려면 구찌 지갑 정도는 들고 다녀야 하고, 그러려면 그 정도는 사줄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을 가진 부모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단 말인가. 

 

얼마 전에 한 지인이 물어왔다. “요즘 어떤 브랜드가 잘 나가?” 디자이너로 지내면서 가장 많이 받아온 질문이자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이 질문에 필자는 꿋꿋하게 늘 해왔던 대로 요즘 메인 스트림에서 훌륭하게 컬렉션을 진행하고 있는 몇 브랜드, 그리고 추가적으로 필자가 눈여겨보고 있는 잘 알려지지 않은 즉, ‘명품관’에 아직 입점돼지 않은 몇 디자이너 브랜드에 대해 의견을 전했다. 

 

그리고 늘 뒤따르는 또 다른 질문. “아니, 그런 거 말고. 보테가 베네타 어때? 살만해?” 오스카 와일드는 이런 말을 했다. 

“ 자본가들은 함께 하는 저녁 자리에서 예술을 논한다. 그리고 예술가들은 함께하는 저녁자리에서 돈 이야기를 한다(When bankers get together for dinner, they discuss Art. When artists get together for dinner, they discuss Money).”​ 

경력사항

  • 現 ) 스트리트캐주얼 ‘FLUX’ director
  • 前 ) 서울패션위크 Generation Next Seoul 참가
  • 前 ) 20th Century Forgotten Boy Band 디자이너
  • 前 ) Parsons the New School For Design, Men's wear B.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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