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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世紀少年의 울트라리스크/이학림

빈센조는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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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학림 스트리트캐주얼 ‘FLUX’ 디렉터 (haklim.lee77@gmail.com) | 작성일 2021년 05월 31일 URL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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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크게 흥행한 드라마 ‘빈센조’. 한국에서도 꾸준히 10%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흥행했으며,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이후 한국을 비롯해 싱가포르, 베트남 등 무려 9개국에서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면서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 클래스’ ‘사이코지만 괜찮아’ 등으로 이어지던 넷플릭스의 한국 드라마 열풍을 이어갔다. 

 

빈센조는 ‘한국에서 입양된 마피아의 변호사’라는 독특한 소재를 활용해 악의 무리를 또 다른 악인 마피아 변호사가 물리친다는 액션극으로, 주인공인 빈센조를 연기한 배우 송중기는 ‘태양의 후예’ 이후로 또다시 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됐다. 

 

이 드라마에서 화제가 된 몇 가지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송중기의 패션일 것이다. 변호사라는 극 중 직업 덕분(?)에 송중기는 내내 수트 차림 혹은 클래식한 룩으로 등장했고 시청자들은 때아닌 눈 호강을 할 수 있었는데, 그래서 이 참에 빈센조의 패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이탈리아 패션은 로마제국 이후로 오랜 세월에 걸쳐 유럽 전체의 유행을 선두 해 온 ‘빅 네임’이다. 

 

이탈리아 패션과 이탈리아

이탈리아 패션은 크게 이탈리아 중간 즈음에 위치한 로마 북쪽과 로마를 포함한 남쪽으로 나눠볼 수 있다. 

 

물론 프라다, 아르마니, 발렌티노, 돌체 & 가바나, 에트로, 에르메네질도 제냐, 구찌, 살바토레 페라가모 등 그야말로 두말하면 잔소리인 세계적인 럭셔리 하우스들이 몰려 있는 곳이 밀라노와 피렌체로 대표되는 로마 북쪽의 도시들이지만, 어쩐 일인지 우리 기억 속에 새겨진 이탈리아의 이미지들은 하나같이 ‘시칠리아’로 대표되는 이탈리아 남쪽의 것들이다. 

 

즉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탈리아 패션에 대한 이미지들, 예를 들면 현란하지만 불편하지 않은 컬러의 조합, 넉넉하고 편안한 실루엣, 실용성과 예술성을 적절히 내포한 디자인 등과 같은 요소들은 밀라노로 대표되는 이탈리아 북부의 이미지이다. 

 

하지만 이탈리아를 떠올릴 때 생각나는 대부분의 이미지, 낡고 누런빛의 허름한 건물들과 붉은 지붕, 분수, 지중해의 강렬한 햇살 같은 이미지들은 현대적인 도시 느낌의 밀라노보다는 로마나 나폴리, 시칠리아와 같이 북부보다 낙후된 느낌을 주는 남부의 것들이라는 점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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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안 패션의 가장 상징적인 아이템을 한 가지만 꼽으라면 그건 바로 바로‘코폴라’라고 부르는‘빵모자’일 것이다. >

 

시칠리안 패션

시칠리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 중에서도 어쩌면 가장 유명한 영화는 바로 ‘시네마 천국’일 것이다.  

 

시칠리아의 한 가상의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시네마 천국은, 등장인물 역시 마을의 평범한 사람들인 만큼 이 영화 안에서는 자연스레 시칠리안 패션을 엿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시칠리아는 벨벳 소재를 활용한 의상이 주를 이루어왔다.

 

황동 단추가 달린 벨벳 조끼인 ‘Panzera’나 주머니가 여럿 달린 벨벳 재킷인 ‘Jippuni’ 등 다른 지역과는 구분되는 특징들이 여럿 있지만, 시칠리안 패션의 가장 상징적인 아이템을 한 가지만 꼽으라면 그건 바로 바로 ‘코폴라(Coppola)’라고 부르는 ‘빵모자’일 것이다. 

 

오랜 기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시칠리아를 상징하는 코폴라는 ‘시네마 천국’에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그런데 언뜻 봐도 코폴라는 대단히 특이한 형태라기보다는 오히려 영국의 헌팅캡과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코폴라는 18세기에 영국에서 시칠리아로 사업을 하기 위해 들어온 상류층 영국인들이 쓰던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모자가 영국에서는 상류층들의 패션 아이템이었던 반면, 모자의 넓은 챙은 뜨거운 지중해의 햇살을 피하는데 유용했을 뿐만 아니라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다는 점으로 노동자들에게 더욱 매력적이었다.

 

때문에 코폴라는 시칠리아의 모든 노동자가 즐겨 쓰게 됐고, 여러 형태와 여러 소재로 만들어지면서 시칠리아를 상징하는 아이템이 됐다. 

 

그리고 일반 노동자들은 검은색 코폴라를, 농부들은 갈색을 썼으며 배 타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감색의 코폴라를 썼다고 한다.

 

시네마 천국의 알프레도는 검은색과 밤색 코폴라를 모두 사용하는데, 이는 그의 직업이 영사기사이기는 하지만 그의 과거 직업이 농부였거나 농부인 아버지를 둔 배경을 가지고 있음을 상징한다.

 

나폴리탄 수트 

시칠리아 노동자들의 상징인 코폴라와는 대조적으로, 시칠리섬의 주도인 팔레르모와 마주하고 있는 항구도시 나폴리는 15세기부터 울과 실크 공장들이 세워져 테일러링이 발달하기 시작해 전문적인 테일러들을 양성했다. 

 

1611년에는 무려 607명의 전문 테일러들이 공식적으로 자격을 인정받았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정교한 테일러링으로 유명하다. 

 

나폴리를 대표하는 럭셔리 브랜드가 바로 ‘키톤(Kiton)’이라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지 않을까? 

 

이런 나폴리 수트를 고려한 듯 드라마 빈센조에서도 수트에 대한 이야기가 가볍게 몇 차례 등장하는데, 극 중 등장하는 이탈리아 장인 브랜드는 ‘Booralro’이다.

 

 ‘부랄로’라니, 혹시 이 이름이 몇 년 전에 철수한 남성복 브랜드 ‘Boggi Milano’로부터 영감을 얻어 만든 이름인지는 모르겠으나, 키톤이 그 모델이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오랜 역사만큼이나 나폴리 수트에는 다른 도시의 테일러링과는 확연히 다른 몇 가지의 특징이 있다. 

 

그것은 나폴리 수트 특유의 ‘스팔라 카마치아(Spalla Camicia)’로, 일반적으로 남성 재킷의 어깨 부분에는 남성다움을 강조하기 위해 어깨 패드를 넣어 각을 만드는 반면, 나폴리 수트는 패드를 넣지 않고 자연스러운 어깨 라인을 만들고 암홀 둘레보다 10cm 정도 넓게 소매를 재단해서 어깨 부분에 주름이 잡히도록 만든 소매 형태를 뜻한다. 

 

어깨 라인은 남성복에서 대단히 중요한 선으로, 각을 없애줌으로써 제복이 주는 절제미와 권위를 포기하는 대신 움직이기 편안한 착용감과 이탈리아 패션 특유의 자유롭고 여유로운 맛을 주는 것이 스팔라 카마치아, 혹은 마니카 카마치아 소매의 특징이다. 

 

이 외에도 아래쪽 라인을 둥글게 굴려 만든 패치 파켓(Pignata), 3버튼 재킷의 첫 번째 단추를 채우지 않고 2버튼 재킷처럼 라펠 롤라인을 넓힘으로써 입기 편하게 만드는 3 Roll 2, 소매 단추를 서로 조금씩 겹치게 달아주는 디테일이나 다소 넓은 라펠 크기 등등, 나폴리 수트는 영국이나 프랑스와는 디테일과 감성을 가지고 있다. 

 

빈센조 카사노

빈센조 카사노는 한 마피아의 콘시글리에레(이탈리아어: Consiglière)이며 카사노 패밀리는 밀라노에 본거지를 둔 집단으로 그려진다. 

 

콘시글리에레는 법률 고문 정도를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마피아 보스의 최측근을 뜻하는 용어로, 실제로 극 중에서 빈센조는 패밀리의 보스가 되어 몰타 인근의 작은 섬을 사서 모든 카사노 패밀리를 끌고 섬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런데 빈센조 카사노는 극 중 ‘단 한 번도’ 이탈리아 수트의 상징인 나폴리 수트를 입고 나오지 않았다. 

 

스팔라 카마치아도, 피그나타도 없었으며 슬쩍 보이는 가짜 버튼홀(3 Roll 2)도 등장하지 않았으며, 종종 그가 캐주얼한 복장으로 등장할 때도 ‘코폴라’는 없었다. 

 

이탈리아인인 그는 언제나 ‘사내 광고 찍는 한국인 대졸 신입사원’ 같았으며, 이탈리아인인 그는 언제나 스위스 브랜드인 ‘Rado’의 시계를 찼고, 이탈리아인인 그는 단 한 번을 제외하곤 언제나 미국의 캐딜락을 타고 다닌다. 

 

즉 드라마 속 빈센조 카사노는 그의 예스럽게 들린다는 이탈리아 이름을 제외하면 ‘전혀’ 이탈리아인 같지 않고 ‘100% 한국에서 태어나 된장찌개만 먹고 자란’ 한국인 같아 보인다는 점이 이 드라마의 고증이 얼마나 취약했고 제작진의 관심 밖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시종일관 어떻게 해서든 ‘빈센조’가 아닌 ‘송중기’를 멋있게 보여줄 수 있는 지에 대해서만 고민한 티가 역력하며, 심지어 마지막 화에서 악당을 처리하는 방식에서조차 이탈리아 마피아의 방식이 아니라 러시아 마피아의 방식을 사용한다.

 

즉 이 드라마에서 이탈리아 마피아는 그저 송중기를 돋보이게 해주고 소재를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도구로만 소비됐을 뿐이라는 점이 끝내 아쉬웠다.

 

2015년 개봉되었던 ‘킹스맨: 시크릿 에이젼트’가 세계적 흥행을 기록한 데는 흥미로운 스토리가 물론 가장 컸지만, 007의 뒤를 잇는 ‘영국 신사 스파이’라는 클래식한 소재를 빈틈없이 재현해낸 부분도 크게 작용했다.

 

뿐만 아니라 메인 빌런인 리치몬드 발렌타인 역시 비뚤게 눌러 쓴 뉴에라의 뉴욕 양키스 캡이나 폴로셔츠, 아디다스의 하이탑 스니커즈까지 ‘미국인’임을 분명하게 표현함으로써, 스토리를 따라가는 것 이외에도 이른바 ‘파고들기 요소’가 넘쳐서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는 점도 흥행에 한몫했음이 분명하다.

 

이미 크게 성공한 드라마에 구구절절 토를 다는 것이 무슨 의미겠냐마는, 만약 빈센조의 시즌 2가 제작된다면 그때는 마니카 카마치아 소매의 나폴리 수트를 입은 빈센조 카사노를 보고 싶다. 왜냐하면 지금보다 훨씬 근사할 테니까.  

 

경력사항

  • 現 ) 스트리트캐주얼 ‘FLUX’ director
  • 前 ) 서울패션위크 Generation Next Seoul 참가
  • 前 ) 20th Century Forgotten Boy Band 디자이너
  • 前 ) Parsons the New School For Design, Men's wear B.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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