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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월 상품이 정상 제품을 구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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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지훈 동인인터내셔날 ‘2XU’ 본부장 (fpost@fpost.co.kr) | 작성일 2019년 12월 30일 URL 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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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라는 말은 ‘그레샴’의 법칙이라고도 불리는데 ‘그레샴’의 법칙의 어원은 16세기 영국의 금융업자이자 엘리자베스 여왕의 재정 고문관이었던 토머스 그레샴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습니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이유는 ‘구축한다’라는 표현 때문에 그렇습니다. 흔히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구축하다’는 말은 ‘이루다’, ‘체계 따위의 기초를 닦아 세우다’의 의미로 사용하는데 그대로 적용해 보면 ‘나쁜 돈이 좋은 돈을 이룬다?’, ‘나쁜 돈이 좋은 돈을 세운다?’라고 떠올려져서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싶습니다. 

 

‘구축하다’라는 말의 두 번째 뜻을 보면 비로소 해석이 되는데 ‘어떤 세력 따위를 몰아서 쫓아내다’의 의미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 어선이 불법 조업을 하자 구축함을 파견했다’에서 구축함이 ‘구축하다’의 두 번째 의미로 쓰인 단어가 되겠습니다. 이런 경우엔 오히려 번역보다 영어 표현이 더 쉬울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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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화가 구축한 양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다’는 영어 표현으로 ‘Bad money drives out good if their exchange rate is set by law’ 인데, 해석해보면 ‘교환비가 법으로 정해져 있을 때 나쁜 돈이 좋은 돈을 몰아내다’입니다. 

 

돈을 처음 만들었을 때 사람들은 몹시 당황했을 것 같습니다. 금속으로 만든 주화를 가지고 쌀이나 옷이랑 바꾸라고 하니, 이게 그렇게 해도 되나 싶었겠죠. 그래서 초기의 화폐가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졌나 봅니다. 사람들이 귀하다고 여기는 금이나 은으로 만들면 화폐의 가치에 의문은 품는 사람은 없었을 테니 말입니다. 

 

가치 있는 광물로 화폐를 만든다면 이제부터는 화폐의 무게가 모두 똑같아야 합니다. 그래서 각국에서 쓰는 돈의 단위가 중량에서 기원하기도 합니다. 

 

파운드는 고대 로마의 중량 단위인 폰두스에서 유래했고 1파운드는 0.454킬로그램입니다. 

 

달러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은화였던 탈러에서 유래했으며 당시 1달러의 무게는 27.5그램이고, 멕시코의 페소는 라틴어 중량을 뜻하는 ‘펜슘’, 우리의 조선시대 돈이었던 관과 은도 각각 3.75kg, 37.5g으로 역시 중량에서 그 어원이 왔습니다. 

 

돈을 만들어서 유통하니 세상이 편해지기는 했는데 세상의 왕들은 항상 더 많은 돈을 갖고 싶어 합니다. 

 

이익을 위해 돈을 더 만들다


16세기 영국의 헨리 8세는 무리하게 지속했던 전쟁과 종교개혁, 여섯번의 결혼을 통해 국가의 재정을 심각하게 만들었고 왕은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가장 손쉬운 방법인 돈을 더 찍어내기로 했습니다. 

 

당시 은화의 은 함량은 92.5퍼센트였는데 은 함량을 33퍼센트까지 낮추어서 발행한 겁니다. 은 함량을 줄인 화폐가 기존의 은화와 같은 가격에 교환되면 은화를 발행한 왕은 그 차액만큼 이익을 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은 함량이 다른 주화를 쉽게 구별해 냈고 질 좋은 주화(양화)는 집에 고이 모셔두고 질 나쁜 주화(악화)만 사용했습니다. 

 

결국 은 함량이 낮아지면 더 많은 주화를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중에 돈이 돌지 않으니 더 많은 통화를 유통하게 되고 결국 은의 부족과 인플레이션에 이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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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샴의 법칙으로 본 이월과 정상


헨리 8세 사망 이후 엘리자베스 1세가 토머스 그레샴에게 나라에 은이 부족한 원인을 조사하게 했는데 그레샴이 여왕에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라는 답변을 했고 경제사에 명언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그레샴이 처음 했던 표현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 보다 앞서 코페르니쿠스가 동유럽의 무질서한 화폐 제도를 지적하면서 비슷한 말을 했고 그런 이유로 동유럽에서는 그레샴의 법칙이라고 하지 않고 코페르니쿠스의 법칙이라고 부릅니다. 

 

‘이월이 정상을 구축한다’라는 말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라는 말에 빗대어 생각해 보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판매율은 물론 판매 예측을 잘못한 경우에도 낮아지지만, 의도적으로 물량을 많이 만들고 외형을 키우기 위해 낮게 설정 할 때도 있습니다. 판매율을 낮게 설정하면 시중에 유통되는 물량이 많아지고 판매 로스가 없어 외형은 커지지만 다음해에 재고가 남게 됩니다. 

 

이렇게 비즈니스를 계속하다보면 쉽게 처분하기 힘든 수준으로 재고가 쌓이게 되고 심지어 재고 중에는 고어텍스와 폴라텍을 사용해서 만든 고기능성 제품도 속하게 됩니다. 

 

신상품과 이월 상품을 비교할 때 디자인이라는 주관성을 배재하고 바라본다면 고어텍스 방수재킷은 비록 1년이 지나긴 했지만 같은 브랜드의 방수 재킷이라는 교환비가 성립합니다. 

 

이런 제품들이 50%에서 많게는 70%까지 세일을 하면 소비자는 정상 제품을 사지 않고 이월 제품만 구매합니다. 결국 정상 제품의 판매율은 계속 낮아지고 재고가 정상 제품을 몰아내는 사태에 이르게 됩니다. 

 

유통은 정상만으로는 판매가 힘들어져 재고와 정상 제품을 같이 취급하는 복합 매장과 같은 기이한 형태의 유통으로 변질 됩니다. 이미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일이며 현재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커다란 문제점 중 하나일 것입니다. ​ 

경력사항

  • 現) 동인인터내셔날 2XU 사업부장
  • 前) 더네이처홀딩스 ‘내셔널지오그래픽 어패럴’ CD
  • 前) 네파 상품기획 팀장/유럽프로젝트장
  • 前) 인디에프 ‘프레디’ 상품기획 팀장
  • 前) 데상트 ‘르꼬끄 스포르티브’ 상품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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